알반상식

십자군 전쟁 요약 설명

청령포 2019. 6. 25.

십자군 전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십자군 전쟁이란 중세 서유럽의 크리스트교

국가들이 이슬람교도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함을 명분으로 일으킨

전쟁인데요, 아래와 같이 십자군 전쟁에 대해 요약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십자군 전쟁 요약>

1. 십자군 전쟁 배경

크리스트교 국가들이 이슬람교도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함을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속 배경은 교황권 강화와 세력의 확대, 지중해 무역의 장악,

영주들의 새로운 영토와 영지의 확보, 농노들의 자유신분 획득 등이 실제 전쟁을

일으킨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십자군 전쟁 기간

1096년~1270년까지 8차례에 걸쳐 170년이 넘도록 지속된 원정 전쟁입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불리는 이유는 전쟁에 참가한 크리스트교 국가의 기사들이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를 표시했기 때문입니다.

 

 

3. 십자군 전쟁 과정

1096년 로마 교황 우르반 2세(재위 1088~1099)를 비롯해 크리스트교 국가들의 국왕,

영주(기사), 농민들이 참여한 대군이 3년에 걸친 행군과 전투 끝에 1099년 7월 15일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습니다.

 

 

승리에 도취한 십자군은 이슬람교 신도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고 금은보화를 탈취

하였습니다. 이때 학살된 이슬람 교도가 무려 7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솔로몬 신전

바닥에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잔인하게 학살을 감행했지만

십자군은 자신들의 학살이 정당한 신의 심판이라고 자부하였습니다.

 

그 뒤로 십자군 전쟁은 7회에 걸쳐 1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되었지만, 예루살렘을

탈환하는데 성공한 것은 제1차 십자군 전쟁뿐이었으며, 전쟁이 계속될수록 신의

이름을 빌린 약탈과 살인, 사기만이 판을 치고 말았습니다.

 

 

4. 십자군 전쟁 결과

① 교황권과 영주(기사) 세력 약화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와 교황을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않게 되었고, 영주들은

전쟁 참여로 인해 영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몰락하면서 봉건제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② 국왕권 강화

상인들은 전쟁을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왕은 교황과 영주들의 힘이 약해진

틈을 이용해 상인들과 손을 잡고 국왕권을 강화시켰습니다.

 

③ 동방무역 활성화

동방과의 활발한 교류로 상공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번성하게 되었으며, 이슬람과

비잔틴 문화를 알게 되면서 유럽의 문화도 크게 변화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참고사항>

십자군 전쟁 당시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로 1107년에 윤관의 여진 정벌, 1196년에

최충헌의 무신정권 집권, 1231년에 몽골의 제1차 침입 등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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